저녁 준비를 서두르다 보면 도마 하나로 모든 재료를 처리하게 되는 순간이 자주 생깁니다. 생닭을 손질한 도마를 물로 한 번 헹군 뒤 곧바로 그 위에서 상추를 씻어 놓거나, 생선을 다듬은 자리에 바로 두부를 올려 써는 식입니다. 도마를 하나 더 꺼내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고, 설거지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몫합니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이 반복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재료에서 재료로, 도마에서 다음 요리로 옮겨가는 통로가 됩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이런 습관이 더 위험해집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도마 표면에 남은 육즙과 수분 속에서 세균이 빠르게 늘어나고, 그 상태로 다음 재료를 손질하면 익히지 않고 먹는 채소나 완성된 반찬까지 오염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도마를 나눠 쓰는 일이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방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위생 습관 중 하나이자 가장 쉽게 무너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도마 하나로 버티는 주방, 무엇이 문제인가
많은 가정의 주방에는 도마가 한두 개뿐입니다. 육류, 생선, 채소, 두부, 김치까지 같은 도마 위를 거쳐 가고, 사이사이 물로 헹구는 정도로 다음 재료를 맞이합니다. 문제는 물로 헹구는 정도로는 도마 표면과 칼자국 사이에 남은 세균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생닭이나 생선처럼 수분이 많은 재료를 다룬 직후에는 도마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육즙 막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렇게 한쪽에 있던 미생물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 오염되는 현상을 교차오염으로 정의하고, 조리 및 취급 과정 전반에서 이를 막는 것을 식중독 예방의 핵심 원칙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생닭을 손질한 직후 같은 도마로 채소를 썰면, 가금류에서 흔히 검출되는 캠필로박터균이 채소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됩니다. 캠필로박터균은 30~45℃ 구간에서 증식이 활발해지는 특성이 있어, 기온이 오르고 삼계탕처럼 생닭을 다루는 요리가 늘어나는 시기에 관련 식중독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실제로 식약처가 집계한 최근 5년(2015~2019년) 통계를 보면 캠필로박터 식중독 환자는 7월에 880명으로 집계되어, 같은 기간 전체 환자 2,384명의 37%가 이 한 달에 몰려 있었습니다. 발생 장소로는 학교급식소가 47%, 학교 외 집단급식소가 23%를 차지해 조리 인원이 많고 재료 회전이 빠른 장소일수록 교차오염 위험이 함께 커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조리기구를 구분해 쓰기 어려운 소규모 주방일수록, 재료를 바꿀 때마다 도마와 칼을 씻고 소독하는 절차를 얼마나 지키느냐가 사고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도마를 나누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부분 "설거지가 늘어난다"는 체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차오염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위험합니다. 재료가 상하거나 냄새가 나는 것과 달리, 오염된 도마를 거친 음식은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원인을 찾기 어렵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이미 식중독 증상이 나타난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도마를 나누는 기준 — 왜 색깔과 용도부터 봐야 하는가
도마 분리의 출발점은 새 도마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도마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 정하는 데 있습니다. 식약처와 식품안전나라는 조리기구를 최소 두 개 이상 준비해 육류·생선용과 채소·과일용으로 나누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두 개만으로도 생재료와 바로 먹는 재료가 같은 표면을 거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집단급식소처럼 조리량이 많은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색깔 구분으로 더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교육부와 식약처가 함께 마련한 학교급식 위생관리 지침서에 따르면, 전처리 단계의 칼·도마는 육류에 분홍색, 어패류에 파란색, 채소류에 초록색을 각각 배정해 구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식재료를 세척·소독한 이후 조리 단계에서는 검정색 칼과 흰색 도마를 사용하고, 가열이 끝난 완제품을 다루는 단계에서는 노란색 칼과 도마로 다시 바꿉니다. 김치처럼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품목은 빨간색으로 통일해 다른 재료와 섞이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분화된 색깔 체계를 가정에 그대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원리, 즉 생재료와 조리 후 재료를 시각적으로 구분해 실수로라도 섞이지 않게 한다는 원리는 가정 주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도마 두 개에 서로 다른 색 테이프를 감아두거나, 앞뒤 면이 다른 색으로 성형된 양면 도마를 하나 마련해 한쪽은 생고기·생선 전용, 다른 한쪽은 채소·완제품 전용으로 정해두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색깔 자체가 아니라, 그 색을 보는 순간 어떤 재료를 올려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 없이 손이 먼저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도마를 나눌 형편이 정말 안 되는 상황이라면, 식약처는 차선책으로 식재료 종류를 바꿀 때마다 도마와 칼을 깨끗이 씻거나 소독할 것을 안내합니다. 이때 손질 순서도 함께 고려하면 위험을 한 번 더 줄일 수 있습니다. 바로 먹는 채소나 과일처럼 가열하지 않는 재료를 먼저 손질하고, 그다음 조리해서 먹는 채소, 마지막으로 육류·생선·달걀 순으로 옮겨가면 생재료의 오염이 이미 손질이 끝난 재료 쪽으로 역류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색 테이프만 붙이면 끝, 이라는 생각이 놓치는 부분
| 확인 항목 | 기준·수치 | 출처 |
|---|---|---|
| 도마 최소 구성 | 육류·생선용 1개, 채소·과일용 1개 이상으로 구분 사용 | 식약처 식품안전나라 |
| 전처리용 색깔 구분 | 육류 분홍색, 어패류 파란색, 채소류 초록색 | 학교급식 위생관리지침서(교육부·식약처) |
| 조리·완제품용 색깔 구분 | 소독 후 조리 단계는 검정 칼·흰 도마, 가열 완제품은 노란 칼·도마, 김치는 빨간색 | 학교급식 위생관리지침서 |
| 열탕 소독 기준 | 생고기·생선 손질 후 80℃ 이상 물로 1분 이상 소독 | 식약처 |
| 가열 중심온도 기준 | 육류 75℃, 어패류 85℃에서 1분 이상 가열 | 식약처 식중독예방 6대 요령 |
| 냉장·냉동 보관 온도 | 냉장 5℃ 이하, 냉동 -18℃ 이하 | 식약처 식중독예방 6대 요령 |
| 캠필로박터 식중독 집중 시기 | 최근 5년(2015~2019년) 중 7월에 전체 환자의 37%(880명/2,384명) 발생 | 식약처 |
| 도마 재질 관리 기준 | 합성수지제·목재류·고무제 등 재질별로 잔류규격·용출규격을 구분 설정 | 식약처 고시 「식품용 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 및 규격」 |
색 테이프를 붙이고 나면 분리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흔한 오해 중 하나는 "항균 표시가 붙은 도마라면 따로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이 항균 표시가 있는 행주와 도마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험에서는 일부 제품이 실제로는 세균이 증식해 표시된 항균력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항균 성능이 확인된 제품이라 하더라도 사용 후 살균·소독 과정이 따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항균 표시를 도마 분리나 세척을 생략해도 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나무 도마는 위생상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는 재질 자체보다 표면 상태와 소독 여부가 더 큰 변수입니다. 식약처 고시인 「식품용 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 및 규격」은 도마 등 조리기구의 재질을 합성수지제, 목재류, 고무제 등으로 나누고 재질별로 잔류규격과 용출규격을 각각 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즉 목재류 도마도 정해진 규격을 충족한 제품이라면 재질만으로 위생상 열등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세척 후 물기를 얼마나 완전히 제거하느냐가 재질 차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세 번째 오해는 "칼자국이 좀 있어도 잘 씻으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도마 표면에 칼자국이 깊어질수록 그 틈에 수분과 음식물 찌꺼기가 고이기 쉽고, 세척만으로는 틈 안쪽까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면이 매끈했던 도마와 달리 흠집이 깊어진 도마는 열탕 소독을 하더라도 물이 틈 안쪽까지 충분히 닿지 못할 수 있으므로, 사용 기간과 무관하게 표면 손상이 뚜렷해졌다면 교체를 고려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마만 나누면 칼은 그대로 써도 된다"는 생각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급식 위생관리 지침서의 색깔 구분이 도마뿐 아니라 칼까지 함께 짝을 지어 관리하도록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도마를 아무리 잘 나누어도 칼 하나로 생고기와 채소를 번갈아 손질하면 교차오염 경로는 그대로 남습니다. 도마와 칼은 한 세트로 묶어 같은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원칙에 더 가깝습니다.
세척과 소독, 어디까지 해야 충분한가
도마를 나눠 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세척과 소독의 순서입니다. 생고기나 생선을 손질한 도마는 세제로 먼저 씻어 겉면의 오염물을 제거한 뒤, 80℃ 이상의 뜨거운 물을 도마 전체에 1분 이상 부어주거나 담가주는 열탕 소독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안전합니다. 세제 세척만으로는 표면의 눈에 보이는 오염을 없앨 수 있어도, 열에 약한 일부 식중독균까지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열탕 소독이 뒤따라야 합니다.
세척한 도마를 어떻게 말리느냐도 소독 효과를 좌우합니다. 젖은 도마를 겹쳐 두거나 눕혀서 보관하면 바닥면에 물기가 고인 채로 마르지 않아 세균이 다시 늘어날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식약처도 도마를 세워서 말리고 젖은 상태로 겹쳐 두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통풍이 잘 되고 햇볕이 드는 자리에 도마를 세워두면 물기가 고르게 마르면서 자외선에 의한 소독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척제 선택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세제를 충분히 헹구지 않고 도마를 그대로 사용하면 미세한 틈새에 세제 잔여물이 남을 수 있고, 이런 환경이 오히려 특정 세균의 증식을 돕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도마는 부드러운 솔이나 수세미로 흐르는 물에 세제를 사용해 씻은 뒤, 세제 성분이 남지 않도록 충분히 헹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열 후 완제품을 다루는 도마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지기 쉽지만, 반찬을 담거나 완성된 음식을 옮기는 도마 역시 정기적인 세척과 건조가 필요합니다. 학교급식 위생관리 지침서가 가열 완제품용 칼·도마를 노란색으로 별도 지정해 관리하는 이유도, 이 단계의 도구가 조리의 마지막 접점이자 완성된 음식이 다시 오염되지 않도록 지키는 마지막 장벽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반찬을 덜거나 김밥을 마는 등 완제품을 다루는 도마를 따로 정해두면, 앞선 단계에서 놓친 오염이 있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 한 번 더 걸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적용하는 도마 분리, 네 단계로
먼저 지금 쓰고 있는 도마의 개수와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도마가 하나뿐이라면 최소한 하나를 더 마련해 육류·생선용과 채소·과일용으로 나누고, 표면에 깊은 칼자국이나 변색이 있는 도마는 이번 기회에 교체 대상으로 표시해 둡니다. 양면 도마를 새로 구입할 계획이라면 앞뒤 면의 색이나 모양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제품을 고르는 편이 실제 사용에서 헷갈릴 여지를 줄여줍니다.
다음으로 도마마다 역할을 정하고 눈에 보이게 표시합니다. 색 테이프를 도마 손잡이나 모서리에 감아두거나, 유성 마커로 용도를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학교급식 위생관리 지침서의 색깔 체계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육류·어패류용과 채소·완제품용을 시각적으로 다르게 표시해 조리 중 무의식적으로 도마를 바꿔 쓰는 실수를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칼도 도마와 짝을 맞춰 같은 기준으로 구분해두면 효과가 더 커집니다.
세 번째로 재료를 손질하는 순서를 정합니다. 바로 먹는 채소·과일을 먼저 손질하고, 그다음 익혀 먹는 채소, 마지막으로 육류·생선·달걀 순으로 진행하면 도마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교차오염 위험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습니다. 이 순서를 지킨 뒤에는 반드시 도마와 칼을 세제로 씻고, 생고기·생선을 다룬 도구는 80℃ 이상 뜨거운 물로 1분 이상 열탕 소독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마지막으로 세척이 끝난 도마는 눕히지 않고 세워서 건조하는 자리를 주방에 고정해 둡니다. 건조대나 도마꽂이를 통풍이 잘 되는 자리에 두면 매번 물기를 닦아 보관할 자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네 단계 — 개수와 상태 확인, 용도 표시, 손질 순서 정하기, 세척 후 세워 건조하기 — 를 한 번 갖춰두면 이후로는 도마를 나눠 쓰는 일이 특별한 결심 없이도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자주 묻는 질문
Q. 도마가 하나뿐인데 당장 어떻게 나눠 써야 하나요?
새 도마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앞뒤 면이 다른 양면 도마를 활용하거나, 식약처 안내대로 재료 종류를 바꿀 때마다 도마와 칼을 세제로 씻고 소독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쓸 수 있습니다. 바로 먹는 채소를 먼저 손질하고 육류·생선을 가장 나중에 다루는 순서를 지키면 위험을 더 줄일 수 있습니다.
Q. 나무 도마와 플라스틱 도마 중 어느 쪽이 더 안전한가요?
식약처 고시 「식품용 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 및 규격」은 도마 재질을 합성수지제·목재류·고무제 등으로 나눠 재질별 규격을 각각 관리하고 있습니다. 재질 자체보다 세척·건조 상태와 표면 손상 여부가 위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Q. 항균 표시가 된 도마라면 따로 소독하지 않아도 되나요?
한국소비자원의 항균 표시 제품 시험에서 일부 도마·행주는 표시된 항균력이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항균 성능이 확인된 제품이라도 사용 후 별도의 살균·소독이 필요하므로 항균 표시만으로 소독을 생략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Q. 열탕 소독은 매번 꼭 해야 하나요?
생고기나 생선을 손질한 직후에는 세제 세척 후 80℃ 이상의 뜨거운 물로 1분 이상 소독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채소나 완제품만 다룬 도마는 세제 세척과 충분한 헹굼, 세워서 건조하는 것만으로도 관리가 가능합니다.
Q. 색 테이프는 어떤 색으로 붙이면 되나요?
정해진 법적 기준은 없지만, 학교급식 위생관리 지침서의 색깔 원리(육류 분홍, 어패류 파랑, 채소 초록 등)를 단순화해 생재료용과 채소·완제품용 두 가지 색으로만 나누어도 가정에서는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정보 기준일: 2026-08-30 · 영업시간·요금·운행은 변동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정보를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