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 시간, 도마 한 장 위에서 손질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닭을 토막 내고 나서 도마를 헹궈낸 뒤 바로 그 위에서 쌈채소를 씻어 올려놓거나, 생선을 손질한 칼과 도마로 곧장 오이를 채 써는 장면도 낯설지 않습니다. 도마가 한 장뿐이거나, 두 장이 있어도 개수대 앞에 하나만 꺼내 쓰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 이런 순서는 매번 반복됩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눈에 보이는 위생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마는 헹궈서 물기만 닦아내면 깨끗해 보이고, 냄새도 크게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식과 가열 식품을 한 도마에서 오가며 손질하는 습관은 문제라는 인식 없이 오래 지속되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이 위험한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집니다. 생고기나 생선을 자를 때 도마 표면, 특히 칼자국이 난 홈에는 그 식재료에 있던 미생물이 옮겨 붙습니다. 이 상태에서 도마를 물로만 헹구고 그 위에서 생으로 먹을 채소를 손질하면, 씻어낸 것처럼 보이는 도마가 사실은 오염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익혀서 먹는 재료라면 가열 과정에서 위험이 줄어들지만, 생으로 먹는 채소나 과일은 그 기회 자체가 없습니다. 도마를 생식용과 가열용으로 나누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도마 한 장으로 여러 재료를 손질할 때 생기는 일

집에서 도마를 여러 장 갖추기 어려운 이유는 명확합니다. 싱크대 옆 공간은 한정돼 있고, 도마마다 크기가 다르면 수납할 자리를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가정이 도마 한두 장으로 육류, 생선, 채소, 과일을 모두 손질합니다. 이 과정에서 재료가 바뀔 때마다 도마를 얼마나 꼼꼼히 씻는지가 위생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데, 실제로는 흐르는 물에 잠깐 헹구는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칼과 도마는 육류·어류용과 채소용으로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며, 여건상 구분이 어렵다면 재료를 바꿀 때마다 충분히 세척한 뒤 사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의 칼과 도마만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손질 순서 자체를 바꾸는 방법도 제시됩니다. 채소를 먼저 손질하고, 그다음 육류, 마지막으로 어패류 순서로 진행하며, 식재료가 바뀔 때마다 세제를 사용해 흐르는 물에 최소 10초 이상 씻어야 한다는 기준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어 어패류나 육류를 손질한 도마로 생으로 먹을 채소를 나중에 다루면, 완성된 음식에 식중독균이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식약처는 설명합니다.

이 지침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헹굼"과 "세척"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로 표면을 씻어내리는 것과, 세제를 써서 흐르는 물에 일정 시간 이상 문질러 씻는 것은 다른 수준의 조치입니다. 도마 표면은 칼질이 반복되면서 미세한 홈이 생기고, 이 홈 안에는 물로만 헹궈서는 빠지지 않는 잔여물이 남습니다. 세제 없이 물로만 씻은 조리도구에서 세균이 다량 검출된 사례가 확인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재료를 바꿀 때마다 세제 세척을 생략하는 습관이 오래 이어질수록, 도마는 매번 새로운 오염원을 다음 재료로 옮기는 통로가 됩니다.

냉장고 보관 단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식약처가 안내하는 교차오염 방지 원칙에 따르면, 육류와 어패류는 냉장고 하단 칸에 두어 육즙이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다른 식품 위에 묻지 않도록 하는 배치가 권장됩니다. 도마 위에서의 순서뿐 아니라 냉장고 안에서의 위치까지 함께 관리해야 손질 전 단계에서부터 오염 경로를 줄일 수 있습니다.

왜 하필 도마인가 — 교차오염이 집중되는 지점

교차오염이라는 개념은 오염된 식재료나 조리기구, 조리자의 손을 통해 미생물이 오염되지 않은 식품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경로 가운데 도마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도마가 여러 식재료가 순차적으로 접촉하는 유일한 표면이기 때문입니다. 칼도 마찬가지로 여러 재료를 거치지만, 도마는 재료가 놓여 있는 시간이 길고 표면적이 넓어 미생물이 머무를 공간도 그만큼 넓습니다.

특히 어패류를 손질한 도마와 칼로 생으로 섭취할 채소를 다루거나, 익히지 않은 육류·어패류가 이미 조리가 끝난 음식에 닿는 경우 식중독균이 완성된 음식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식약처는 설명합니다. 이 설명에서 핵심은 "익히지 않은 상태"와 "이미 조리된 상태"가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데 있습니다. 가열 조리는 대부분의 식중독균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단계이지만, 그 가열이 끝난 뒤에 오염된 도마나 칼이 다시 음식에 닿으면 가열의 효과가 무의미해집니다. 무침 요리처럼 삶은 재료를 마지막에 생채소와 섞는 조리법에서 이런 역전이 특히 자주 발생합니다.

목제 도마는 이 문제에서 조금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재질입니다. 칼질이 반복되면서 표면에 미세한 홈이 생기고, 이 부분에 미생물이 서식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재질 자체보다 관리 방식이 더 중요한 변수로 꼽힙니다. 세척 후 물기를 충분히 건조시키면 미생물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 안내되고 있어, 나무 도마든 플라스틱 도마든 씻은 뒤 바로 겹쳐 보관하지 않고 완전히 말리는 과정이 재질보다 우선하는 관리 요소입니다.

가정 내 도마 위생 상태를 점검한 조사에서는 관리가 미흡한 도마에서 다량의 세균이 검출됐고, 보관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황색포도상구균과 대장균군까지 확인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도마가 특별히 위험한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매일 여러 재료를 거치면서도 그때그때 충분히 세척·건조되지 않는 사용 습관이 누적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집단급식소는 어떻게 나누는가 — 색상 구분 기준

가정에서는 도마를 색깔별로 나누는 경우가 드물지만, 집단급식소에서는 이미 표준화된 기준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고시 제2021-74호 집단급식소 급식안전관리 기준은 2021년 9월 2일 제정돼 같은 해 10월 13일부터 시행됐으며, 조리 과정에서 쓰는 칼과 도마를 용도별 색상으로 구분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전처리용 칼·도마는 육류를 분홍색, 어패류를 파란색, 채소류를 초록색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식재료를 소독한 뒤 실제 조리에 들어가는 단계에서는 검정색 칼과 흰색 도마를 사용하도록 하는 체계입니다.

이 기준이 가정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원리는 동일하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재료군마다 도마를 눈에 띄게 구분해두면 헹구기만 하고 다음 재료로 넘어가는 습관 자체가 줄어듭니다. 아래 표는 집단급식소 기준의 색상 구분과, 가정에서 참고할 만한 최소 도마 구성을 함께 정리한 것입니다.

구분집단급식소 기준(전처리용)가정에서 참고할 최소 구성
육류분홍색 도마·칼육류 전용 도마 1장
어패류파란색 도마·칼생선·해산물 전용 도마 1장(육류와 겸용 시 세척·건조 철저)
채소류초록색 도마·칼생채소·과일 전용 도마 1장
조리 완료(소독 후)검정색 칼·흰색 도마익힌 음식을 담거나 자를 때 별도 도마 사용

가정에서 도마 세 장을 모두 갖추기 어렵다면, 최소한 생으로 먹는 채소·과일용 도마 한 장만은 육류·생선용과 분리하는 편이 교차오염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입니다. 무침이나 샐러드처럼 가열 없이 바로 먹는 음식을 다루는 도마일수록 다른 재료와 겹쳐 쓰지 않는 원칙을 우선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소독은 헹구는 것과 다릅니다 — 온도·시간 기준

도마를 나눠 쓰더라도 세척과 소독이 부실하면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식품접객업자와 집단급식소 운영자에게 물수건, 식기, 도마, 칼 등 주방용구를 살균소독제 또는 열탕 방법으로 소독한 것을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열탕소독 기준은 77℃에서 30초 이상으로, 뜨거운 물을 잠깐 붓는 정도로는 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습니다. 염소소독을 택하는 경우에는 5분간 침지한 뒤 냄새가 나지 않을 때까지 먹는 물로 충분히 헹구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살균소독제를 쓴다면 성분도 확인해볼 부분입니다. 국내에서 조리기구용 살균소독제로 지정된 성분은 에탄올, 이염화이소시아뉼산나트륨, 차아염소산나트륨, 차아염소산수, 과산화수소, 과산화초산 등 9품목입니다. 시중 제품을 고를 때 이 성분표를 참고하면 용도에 맞는 소독제인지 가늠할 수 있고, 제품 라벨에 적힌 희석 비율과 접촉 시간을 지키는 것이 소독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됩니다.

세척과 소독의 순서도 중요합니다. 기름기나 단백질 잔여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소독제를 뿌리면 살균 성분이 오염물과 먼저 반응해 실제 소독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세제로 표면의 잔여물을 먼저 제거하고, 흐르는 물로 헹군 뒤 소독 단계로 넘어가는 순서를 지켜야 열탕이든 소독제든 본래 기준대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오해,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

"뜨거운 물로 헹구면 웬만한 균은 다 죽는다"는 생각은 소독 기준과 거리가 있습니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정한 열탕소독 기준은 77℃에서 30초 이상 유지하는 것이며, 수돗물을 데워 잠깐 붓는 정도로는 이 온도와 시간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물을 나무 도마에 자주 부으면 표면이 갈라지거나 뒤틀리는 손상이 먼저 생길 수 있어, 온도보다 세척·건조 습관을 우선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나무 도마는 비위생적이니 무조건 플라스틱을 써야 한다"는 판단도 관리 방식이라는 변수를 빼놓고 있습니다. 목제 도마는 칼자국으로 표면이 손상되기 쉬운 재질이지만, 세척 후 충분히 건조하면 미생물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돼 있습니다. 반대로 플라스틱 도마도 칼자국이 깊게 파인 채 방치되면 그 홈 안에 잔여물이 남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재질 선택보다 재료를 바꿀 때마다 세척하고, 사용 후에는 완전히 말리는 습관이 더 근본적인 관리 기준입니다.

"국물 요리나 찌개에 들어갈 재료는 어차피 끓이니까 도마를 안 나눠도 된다"는 생각도 예외가 있습니다. 가열 전 단계에서 육류나 생선을 손질한 도마가, 같은 요리에 들어갈 생채소나 이미 익혀둔 고명을 손질하는 순서로 이어지면 가열되지 않는 재료 쪽에서 오염이 그대로 남습니다. 조리 과정 전체가 가열로 끝나더라도, 그 안에서 생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하나라도 있다면 도마 순서를 지키는 것이 안전합니다.

식중독 통계도 이런 오해가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식중독은 총 319건, 환자 수는 9780명으로 전년보다 발생 건수는 20%, 환자 수는 28% 늘었습니다. 원인균별로는 살모넬라가 79건(25%, 4248명)으로 가장 많았고, 노로바이러스 68건, 병원성대장균 23건이 뒤를 이었습니다. 살모넬라는 달걀 등 식재료 취급 과정의 교차오염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균으로, 조리 도구를 재료별로 나누고 세척 기준을 지키는 습관이 통계상으로도 무관하지 않은 예방책임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도마를 나누는 방법

도마를 새로 들이지 않고도 구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갖고 있는 도마가 두 장이라면, 한 장은 생으로 먹는 채소·과일 전용으로 정해 다른 재료가 절대 닿지 않도록 하고, 나머지 한 장으로 육류·생선을 번갈아 쓰되 재료가 바뀔 때마다 세제로 흐르는 물에 최소 10초 이상 씻는 원칙을 지키는 방식이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도마가 한 장뿐이라면 손질 순서를 채소 → 육류 → 어패류로 고정하고, 재료가 바뀌는 시점마다 세척을 생략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도마를 구분했다면 서로 헷갈리지 않도록 표시해두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손잡이나 모서리에 색깔 스티커나 유성펜으로 표시를 남기거나, 집단급식소 기준을 참고해 채소용은 밝은색, 육류·생선용은 어두운색 도마를 별도로 구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표시가 명확할수록 바쁜 시간대에도 손이 먼저 맞는 도마를 집게 됩니다.

세척과 건조 동선도 함께 정리해두면 유지가 쉬워집니다. 개수대 옆에 도마를 세워 말릴 수 있는 거치대를 두고, 사용한 도마는 씻은 즉시 물기를 닦아 세워두는 습관을 들이면 젖은 채로 겹쳐 보관하다 미생물이 번식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열탕소독이 필요한 날에는 77℃ 이상 물에 30초 이상 담그거나 붓는 절차를 지키고, 소독제를 쓸 때는 제품에 표시된 희석 비율과 접촉 시간을 따르는 것이 효과를 보장하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마 구분은 한 번 정해두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매번 확인이 필요한 습관이라는 점을 기억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손님이 많아 조리대가 붐비는 날이나, 재료 손질이 몰리는 명절 준비 기간처럼 평소 순서가 흐트러지기 쉬운 상황일수록 채소를 먼저, 육류와 어패류를 나중에 손질하는 원칙을 의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교차오염을 막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도마를 한 장만 쓸 수밖에 없다면 어떤 순서로 손질해야 하나요?

식약처 지침에 따르면 채소를 먼저 손질하고, 그다음 육류, 마지막으로 어패류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재료가 바뀔 때마다 세제를 사용해 흐르는 물에 최소 10초 이상 세척해야 합니다.

Q. 도마를 물로만 헹궈도 되나요, 꼭 세제를 써야 하나요?

물로만 헹구는 것과 세제로 흐르는 물에 씻는 것은 다른 수준의 조치입니다. 세제 없이 물로만 씻은 조리도구에서 세균이 다량 검출된 사례가 확인돼 있어, 재료를 바꿀 때마다 세제 세척을 생략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열탕소독은 뜨거운 물을 잠깐 붓는 것으로 충분한가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정한 열탕소독 기준은 77℃에서 30초 이상입니다. 잠깐 물을 붓는 정도로는 이 온도와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실제 소독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Q. 집단급식소의 도마 색상 구분을 가정에서도 그대로 따라야 하나요?

식품의약품안전처고시 제2021-74호는 전처리용 도마를 육류 분홍색, 어패류 파란색, 채소류 초록색으로, 조리용은 흰색 도마로 구분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색상까지 맞출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생채소·과일용 도마 한 장만은 육류·생선용과 분리하는 원리를 가져오면 도움이 됩니다.

Q. 나무 도마와 플라스틱 도마 중 어느 쪽이 더 위생적인가요?

재질보다 관리 방식이 더 중요한 변수로 꼽힙니다. 목제 도마는 칼자국에 미생물이 서식하기 쉬운 편이지만 세척 후 충분히 건조하면 증식을 억제할 수 있고, 플라스틱 도마도 홈이 깊게 파인 채 방치되면 마찬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출처

정보 기준일: 2026-08-30 · 영업시간·요금·운행은 변동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정보를 확인하세요.